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라위 왕조 (문단 편집) === 내전과 위기 === 이스마일 사후 벌어진 내전은 가혹한 세금에 대한 반란과 겹쳐 모로코에 큰 혼란을 야기하였다. 또한 이스마일 시기에 큰 권력을 지니게 된 흑인 부대 (아비드)는 술탄들을 옹립하고 폐하기를 반복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우선 1727년 후계자 아흐마드 앗 다하비가 술탄에 올랐으나 1728년 형 압둘 말리크에게 찬탈당했다가 복위한 후 1729년 사망하였다. 그후 아비드의 지지를 받은 동생 물라이 압둘라가 계승, 내분으로 얼룩진 메크네스 대신 페스 근교에 다르 드비베그를 건설하고 머물렀다. 그러나 압둘라가 점차 아이트 이드라신 베르베르 부족, 우다야 아랍 부족, 페스 주민들과 가까워지자 권력을 독점할 수 없게 된 아비드 세력이 알리와 무함마드 등 다른 왕자들을 지원하며 1733년부터 재차 내전이 지속되었다. 그동안 압둘라는 도합 8년 가량 6번 찬탈당한다. 특히 그 중 3번 찬탈한 알 무스타디는 1738-40년, 1742-43년, 1747-48년 재위하였다. 한편 내전 동안 모로코 북부는 알리 알 리피의 아들 아흐마드의 지도 하에 사실상 독립하였다. 탕헤르를 수도로 삼은 아흐마드 알 리피는 해협 건너 지브롤터의 영국인들과 교역하고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는 알 무스타디 및 아비드와 동맹하였기에 압둘라와 대립하였고, 1741년에는 페스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반격에 나선 압둘라는 1743년 아흐마드 알 리피를 격파, 전사시킨 후 모로코 해안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였다. 1748년 알 무스타디를 마지막으로 폐위시킨 후 즉위한 압둘라는 부친과 달리 많은 아들을 낳지 않았고, 9년간의 안정된 통치 후 사망할 때에는 아들이 시디 무함마드 (무함마드 3세) 뿐이었기에 분쟁 없이 즉위할 수 있었다. 이는 모로코 근세 역사에 있어 16세기 [[아흐마드 알 만수르]] 이후 가장 매끄러운 계승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